‘게놈’같은 책을 고르게 된 이유

다 읽고나서 알게 됐지만 ‘게놈’은 보통 찾기 힘든 녀석이 아니다.

책을 읽고 소감을 정리하려고 보니,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부터 고민이다. 제목만 보면 유전학을 과학적 근거로 한 인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유전학자의 30년간의 자서전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학문이라고 부르기에 아직은 케이스를 쌓아가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학 전공자로서 ‘진짜’ 학문에 대한 동경같은 것이 있다. 학생 때는 경제학이 그랬고, 지금은 인류학이 그렇다. 필자의 인류학에 관한 관심은 유전학이나 고고학과 같은 학문적인 호기심보다는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읽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말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로부터 시작된 인류학에 관한 관심

두번 정도 읽었지만 아직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두번 정도 읽었지만 아직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냥 대단하다는 생각정도만 하는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이기적 유전자’를 다 읽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원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이유는 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지적 대화를 위한 얇고 넓은 지식’을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처음으로 교과서를 의심할 수 있게 되었다. 진화라는 것이 객체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 생긴 결과인지, 아니면 유전적으로 형성된 종의 최우선 목표가 번식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교과서보다 더 설득적으로 들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 때 교과서는 성경과 같이 감히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의 정수만을 모아놓은 성스러운 책이었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처음으로 교과서를 통해 배운 내용을 의심할 수 있었고, 교육을 위한 용도와 실제 학문은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때부터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그리고 교과서와는 다른 생각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게 되었고, 그것이 논리적이라면 가감 없이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진화, 혹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관심은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으면서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인문학적 상식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를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이론이 뿌리를 두고 있는 과학적 근거들과 가장 업데이트된 인류학적 이슈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필자는 책을 구입하면서 기대감보다는 각오를 했었다.

“한글인데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더 많을테지만, 그래서 재미도 더럽게 없겠지만, 눈 딱 감고 한 번만 끝까지 읽어보자!”

유전학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열정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

다짐이 무색하게 책은 쉽게 잘 읽혔다. 그것도 재미있게. 물론 중간중간 이해를 위해서 Wikipedia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많았다. (mtDNA, 핵 게놈, 미토콘드리아 같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것은 유전학과 인류학에 대한 얕은 지식보다는 끊임없는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발전시킨 연구 방법론과 이것을 30년 넘게 해낸 저자의 열정이다.

저자도 책을 써내려가면서 필자가 느낀 바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획기적이고 기발한 연구 결과는 책보다는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본 책에서 주요 연구 결과에 관한 내용은 학술지를 참고할 것을 권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연구를 하기 위한 과정(마치 일기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try & error,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문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성공

책 제목부터 ‘비밀’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주문을 걸어라”고 하는 책을 읽고 나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런 자기계발서는 항상 베스트셀러 한 켠에 존재하고, 또 그것을 보는 사람은 그 책을 읽고 새로운 인생을 산다기보다는 또 다른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와 같은 책이 자기계발에 더욱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특정 분야에 열정을 갖고 평생의 연구를 통해 성과를 이룬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며, 보고 있으면 가끔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를 흥미롭게 읽었던 이유도 알고 싶었던 정보를 얻게 되었던 것이 아니라 저자의 열정 넘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함께한 평생의 여정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인류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고 절대 말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평생에 걸친 열정과 노력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된다.

아, 근데 내 몸에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여 있다니….

Posted by 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