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마케터? 무슨 일을 하냐고?

같이 학교생활을 한 동기들이나 후배를 만나면 의외로 필자가 하는 일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한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마케팅팀은 있기 마련이다. 다만 실제 소비자를 대상으로 광고를 만드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거쳐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갖게 되는 일반적인 직업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도 하고, 또 마케팅에 대한 투자가 많은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조직이 그렇게 크지 않다. 필자도 그랬듯이 대학생들이 가진 진로에 대한 고민, 그리고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한 걱정에 대해 적어도 대기업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정도는 한 번쯤 소개하고 싶었다. (앞으로 소개할 업무는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업무로 한정 지었다.)

크리에이티브 기획 / 제작

<촬영장도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인 장소는 아니다>

대기업에 종사하는 마케터1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마케터라고 했을 때 대다수 사람이 떠올리는 광고(TVC, Product Video, Viral Movie 등)를 제작하는 역할이다. 제품 철학에 어울리는 광고 컨셉을 개발하고, 이것을 토대로 스토리보드를 만든다.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의사 결정을 받아 모델과 로케이션을 섭외하고 실제 촬영 후 편집까지 거쳐 광고를 완성하는 역할이다.

마케팅 직군에 원서를 쓰면서 광고 제작하는 일을 염두에 두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는 서류 통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다수의 마케팅 직군 신입은 영업 업무를 하게 된다. 광고를 직접 제작해보는 일이 하고 싶다기보다는, 지원하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원서를 쓸 때 영업 사원의 관점에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편이 읽는 사람에게 훨씬 현실적이고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상을 주기에 유리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광고 제작하는 업무는 신입에게 잘 주어지지 않는다. 기업이 속해 있는 산업과 제품군에 대해 깊은 이해를 거친 뒤에야 겨우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디어 전략 / 집행

<일정 수준 이상의 매체비가 보장되어야 ‘미디어 전략’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

두 번째는 media planning이다. 제품 혹은 광고에 따른 media mix를 통해 어떤 매체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투입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집행한다. 미디어 타깃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지상파와 CATV 간에 비중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온라인 매체비의 규모와 노출 대상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대기업 마케팅 조직에 있지 않고서는 쉽게 경험하기 힘든 것이 바로 큰 규모의 매체비를 집행하는 미디어 전략을 세워보는 것이다.

광고를 제작할 기회는 스타트업에도 많이 존재한다. 매체비가 저렴한 온라인 채널이 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기업에서 다양한 광고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광고를 실제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체비가 보장되지 않으면 ‘몰아주기’식으로 한정적인 채널에 몰방할 수 밖에 없다. 의미 있는 미디어 믹스를 통한 전략을 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2 그래서 중소기업이 대기업 마케터를 스카우트하면서 기대하는 것은 그가 만들 기깔나는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아주 큰 금액의 미디어 집행을 해 본 경험인 경우가 많다.

대기업 마케터가 ‘잘’ 할 수 있는 일

실제로 대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는 필자도 광고 제작보다 미디어 기획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3 클라이언트의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감각은 절대 에이전시보다 좋을 수 없다.(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에이전시보다 더 크리에이티브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안타깝지만 당신을 고용한 회사로서는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다만 클라이언트로서 할 일은 광고 컨셉을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과 결과물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다. 하지만 미디어 전략은 클라이언트의 몫이다. 개별 광고 에이전시가 할 수 없는 IMC 관점의 미디어 믹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은 물론이고 적기 미디어 노출로 효과도 높일 수 있다.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하는 많은 후배들은 해외에서 모델들과 함께 광고 촬영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는 것 같다. 단언컨대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를 기획하고 광고 촬영을 하고 싶다면 에이전시로 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대기업 마케팅은 영업의 일부분이며, 해외에서 광고를 촬영하는 즐거움보다는 그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해서 매출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크다.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필자도 학생 때부터 시작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선택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1. 여기서 언급하는 마케팅은 제품부터 영업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 아닌, 직접적인 대 소비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TVC, Print, Product Video, Digital/Off-line Event etc) 
  2. ‘요기요’를 보면 빅 모델 광고를 TV에 한정 지어 매체비를 집행하고 있다. 배달 음식을 먹는데 남녀노소가 어디 있겠냐고 판단했을지 모르지만,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배달해 먹는 사람은 분명 한정되어 있다. TV가 최적의 미디어인지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까지도 관성적으로 집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디어 전략이 부재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3. 마케팅에서 크리이에티브가 미디어 전략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기업에 고용된 마케터 입장에서 해당 업무가 갖는 밸류가 더 높다는 의미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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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