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berg Variations’ – 바흐의 새로운 도전

캐나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

캐나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J.S. Bach의 명곡이면서 동시에 난곡으로 알려진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는 악기 구성만 놓고 본다면 건반악기(정확하게는 하프시코드harpsichord라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주로 쓰인 악기)만을 위한 다소 단순한 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Rubik’s Cube of invention and architecture“이라고 평가되는 아주 까다로운 곡이다. 변주곡에 대해 큰 흥미가 없던 바흐가 남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스스로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1932~1982)는 22살에 녹음한 이 변주곡 음반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최고의 interpreter로 평가받으며 ‘Glenn Gould is Bach himself’라고 불리고 있다.

‘Goldberg Variations’ – 카이저링크 백작의 불면증 치료제

개인적으로 이 곡을 지극히 ‘기능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어떠한 영감을 얻고 즉흥적으로 내놓은 음악이 아닌 카이저링크Keyserlingk 백작의 불면증을 치료해주기 위해 만든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40~45분 정도 길이1의 이 곡에는 30개의 변주가 있는데 잔잔하게 시작한 연주는 끝날 때까지 생동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듣는 이가 곡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수면에 빠져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흐의 세심한 배려가 녹아있는 곡이다. 실제로도 백작의 불면증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고 하니,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적당한 볼륨으로 들어보기 바란다.

‘Goldberg Variations’ – ‘양들의 침묵’의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는 장치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라면 쉽게 알 수 없는 이 곡이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는 컬트 영화의 거장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 감독의 공포영화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91)이었다. 영화 속 닥터 한니발 렉터가 식사를 가져온 감시 경찰관을 죽이고 먹어버리는 끔찍한 장면을 연출할 때에 나오는 음악이 바로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이 장면 이외에도 한니발이 바흐의 팬이라는 힌트는 영화 곳곳에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조나단 드미 감독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본인이 연출하는 영화의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는 장치로 사용했다.

이전 포스팅에서 바흐의 독창적인 작곡기법 counterpoint(대위법) 에 대해 짧게 설명한 적이 있다. 대위법은 굉장히 수학적이고 계산적이다. 철저한 룰이 존재하는 바흐의 음악에는 멜로디, 리듬 어느 한 요소도 흐트러짐이 없으며 이런 ‘완벽주의자’ 바흐의 음악적 요소들이 연주자들을 괴롭게 한다. 하지만 그런 치밀하고 계획된 음악적 요소들이 영화 속 ‘한니발’의 캐릭터와 어우러져 소름 돋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그는 뛰어난 지능과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능력까지 있는 극악무도한 serial killer로 나오는데, 그런 그의 특성과 성격들이 흐트러짐이 없고 복잡한 바흐의 음악과 굉장히 닮아있다.

연주자에게 대위법이라는 작곡법으로 지독할 만큼 혹독한 과제를 내준 바흐, 그리고 살인의 대상을 정하고 실행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과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한니발. 카이저링크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듣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친절한 음악을 선사한 바흐, 그리고 살인의 대상이 아닌 사람을 대할 때는 흐트러짐 없이 태연함과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니발. 조나단 드미 감독의 치밀한 계획의 결과로 우리는 ‘양들의 침묵’을 보면서 소름 돋는 몰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2

‘Goldberg Variations’ – 슈만의 self-therapy가 되어준 바흐의 대위법

바흐의 음악을 ‘기능적’으로 사용했던 클래식 작곡가도 있다. 낭만파 작곡가 쇼팽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간 천재작곡가이자 비운의 주인공인 로버트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이다.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고 싶었지만 자신의 기대를 넘지 못했던 슈만은 자초한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가의 삶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작곡가로서 비평가로서 사랑하는 부인 클라라Clara Wieck Schumann와 행복한 삶을 누리는 듯 보였던 그는 20대부터 시작된 mental illness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자살시도까지 했으며, 그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고작 2년 뒤 4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위로법이 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픈 노래와 함께 울어버리는 사람, 반대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과 함께 이겨내는 사람이 있다. 슈만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 실패와 피아니스트로 자신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나타내는 부인의 콘서트 투어, 그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마음의 병으로 인해 오는 자괴감과 우울증, 그리고 정신분열까지 겪으며 쇠약해지는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찾아낸 치료제 self-therapy는 바흐의 음악, 정확하게는 바흐의 작곡기법 counterpoint(대위법)이었다. 낭만파시대의 즉흥 improvisation 과는 거리가 먼 바흐의 대위법은 계획적이며 규칙이 있고 음악 속 기승전결이 섬세하게 진행되는데, 이 속에서 슈만은 자신만의 self-therapy를 찾아내었던 것 같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을 위해 공부했던 슈만은 결국 본인만의 대위법 counterpoint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좋은 음악? 나쁜 음악?

“There were only two kinds of music: good music and bad music. But if you ask thirty people in your class, you’ll probably get thirty different kinds of good music and even more kinds of bad music.”
Duke Ellington

재즈 피아니스트 Duke Ellington은 세상에 두 가지 종류의 음악,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이 있다 했다. 하지만 30명에게 물어본다면 30가지의 좋은 음악과 30가지의 나쁜 음악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음악에 대한 평가는 듣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음악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나서 느낀 청자의 평가만이 결정할 수 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의미가 되었는지는 위의 짧은 사례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누구에게는 달콤한 자장가였고, 또 다른 이에게는 끔찍한 장면을 더욱 소름 돋게 만들 최적의 음악이면서, 동시에 또 누군가에겐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몰입하기 위한 대상이었다. 오랜 시간 클래식이 사랑받고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각자의 사연으로 음악을 완성하기 때문이 아닐까?


  1. 혹자는 곡의 길이가 어떻게 ’40~45분’으로 표현하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클래식의 경우 연주자의 개인 해석과 역량에 따라 곡의 길이가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 위에서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바흐의 의도대로 잠이 안오는 밤 들어보라고 했는데, ‘양들의 침묵’을 보고나면 솔직히 잠이 더 안오는 것 같다. 

Posted by C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