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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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기획사의 연습생을 모아놓고 매주 미션 수행을 통해 최후의 11명을 걸그룹으로 데뷔시킨다.

11명의 국가대표 걸그룹을 뽑는단다. 이미 너무 많아서 보고도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굳이 새롭게 또 국가대표 걸그룹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주말에 멍하니 Mnet을 틀어놓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어중간한 시간이라 해당 프로그램을 1화부터 4화까지 연속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힐긋 힐긋 보다 보니 어느새 앉아서 완전히 프로듀스만 보고 있게 되었다. 유치해서 안 보려고 했던 프로그램을 이제 매주 보게 될 것만 같아서, 다른 사람은 쓸데 없이 시간 뺏기지 말라는 의미에서 얼마나 무서운 프로그램인지 설명하려고 한다.

미분과 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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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열인 필자가 이해하는 미분, 적분의 개념.

갑자기 왜 미분과 적분 이야기를 꺼내는가 싶을지 모르겠지만, 이것만큼 스토리텔링의 힘을 가장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EPL(England Premier League)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생각해보자.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이 물러나고 난 다음 시즌 맨유의 성적만 보면 결코 강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맨유를 약팀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우리가 강팀이라고 부르는 팀도 한 경기에서, 혹은 한 시즌에서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의 패배 때문에 그 팀이 더 이상 강팀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거나 약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오랜 시간 동안 보여준 팀의 성과가 강팀임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기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미분적 평가라고 볼 수 있다. 순간을 따로 잘라내 그 안에서의 성과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수학에서 기울기를 비교하는 미분적 접근과 매우 닮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1

한편 EPL의 ‘Big 4’라 불리는 강팀들을 보면 모든 시즌 최고의 성적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EPL의 긴 역사 속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오면서 관중들에게 강팀, ‘Big 4’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팀의 창단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보여주고 있는 모든 시즌의 성과를 합해서 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수학에서 적분의 개념과 매우 닮아 있다.

마케팅에서 적분과 미분.

무대를 그라운드에서 마케팅으로 옮겨보자. 미분의 마케팅이라고 하면 Product Marketing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제품 중심 마케팅 활동으로 보통 신제품이 나오면 마케팅을 시작해서 PLC 상 growth 단계까지 거의 모든 마케팅 비용을 투자한다. 반면 Brand Marketing 혹은 Coporate Marketing은 적분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제품 출시 시점이 아니더라도 seasonality를 활용해 브랜드 광고나, 기업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꾸준히 기업 가치와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둘 사이의 차이점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시장의 선두 기업은 적분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한다. 앞선 EPL의 사례에서도 봤듯이 한 번의 실수, 한 제품의 실수가 시장을 리드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후발 주자가 쌓을 수 없는 브랜드 가치와 기업 스토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Apple의 경우를 보면 초기 스마트폰 시장을 열었을 때는 Product Marketing에 투자를 했지만, 경쟁자가 많아지면서 제품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slice of life’ 속에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지금은 매우 보편적인 기법이지만 그 당시에는 제품을 명확히 노출하지 않는 다소 과감한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만’ 있는 광고

스토리의 힘의 강력함은 footage 광고2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응답하라 1988’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간 뒤 남은 것은 복고 열풍이 아니라 footage 광고였다.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사용된 제품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에도 ‘응답하라 1998’의 드라마 원본 영상을 편집해서 교모하게 기업의 광고처럼 편집해 TV Commercial로 집행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footage 광고는 원 드라마가 갖는 스토리의 힘 외에는 크리에이티브 적으로 어떤 효과도 노리기 어렵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기간이 매우 짧고 초상권 협의만 되면 제작 비용이 들지 않아 가장 쉬운 형태의 광고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존재하는 소스를 사용해야 하는 만큼 크리에이티브 스타일, product-aligned 메시지 등 어떤 것도 딱 들어맞기 어렵기 때문에 footage 광고를 집행하면서 노리는 것은 단 하나, 원 드라마 갖는 스토리를 통한 안정적인 attention 밖에 없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스토리는 기업에서 메시지를 포기해서라도 살 용의가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프로듀스 101’ 기획 배경

다시 ‘프로듀스 101’로 돌아와보자. 각 소속사 연습생들을 모아 국가대표 걸그룹을 만든다는 기획의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케이블CATV의 성장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거창하게 케이블의 성장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이 ‘CJ Entertainment’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CATV가 일반화 되면서 케이블 채널의 수가 증가했고, 각 채널의 역활도 과거에는 지상파의 재방송을 다시 보여주는 용도3로 사용되었지만 어느새 자체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인 채널의 역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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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의 케이블 채널들 – 거의 모든 채널이 독립적으로 컨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 그 채널들이 대한민국 컨텐츠 공룡 CJ Entertainment의 아래에 있다. 소속사에서 가장 목마른 것은 본인들이 갖고 있는 스타들이 나올 수 있는 컨텐츠다. 미디어와 컨텐츠 모두를 갖고 있는 CJ의 케이블 채널들은 막강한 캐스팅 파워를 가자게 되었고, ‘프로듀스 101’과 같은 기획이 가능했던 것이다. (‘프로듀스 101’의 경우 소속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는 것이 본인들도 확신하기 어려운 연습생에 대한 평가를 받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소속사 입장에서 스토리텔링 스타 마케팅의 유용성

일반적으로 스타라고 하면 데뷔 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간다. 그것을 흔히 캐릭터라고 부르고, 한번 형성되면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소속사에서 행동거지, 말 한마디까지 철저히 관리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소속사 입장에서 참 어려운 과정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기에 비용도 많이 듣다.

‘프로듀스 101’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소속사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한 기회 비용과 관리 소홀로 인한 실패의 위험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과거에는 스타가 됨직한 연습생을 선 선택 후 투자를 했다면, 이제는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연습생에게 조금의 도움(투자)만 보태면 되기 때문이다. 관리에 대한 위험도 적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악의적인 편집 속에서도 특유의 착함과 밝은 모습을 어필하는 연습생들이 분명 있다. 그들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꾸준히 본인의 스토리를 쌓게 되면 오히려 데뷔 이후 안정적인 인기와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느끼는 스토리텔링 스타 마케팅

시청자도 이런 기획이 반갑다. 연습생은 말 그대로 내 옆집에 살고 있는 예쁜, 혹은 노래를 제법 잘하는 여학생과 다르지 않다. 그런 학생들이 매주 경쟁을 통해서 스타라는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데뷔 무대라면서 처음 보게 된 걸그룹에 느끼는 감정과 ‘프로듀스 101’에서 꾸준히 응원한 연습생이 데뷔하는 첫 무대를 보는 기분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Pick me’의 무대를 프로그램을 보기 전에 유튜브를 통해 접할 기회가 있었다. 솔직히 너무 많은 인원이 나와서 누구하나 기억나는 사람도 없었고, 찾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TV에 나오는 걸그룹도 전부 모르는데 연습생을 검색하고 기억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데 4회까지 몰아보고 다시 유튜브에서 ‘Pick me’를 보는데 응원하는 연습생이 언제 나오나 그것만 기다리게 되더라…

개인적으로 절대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이런 프로그램을 보는 본인이 부끄러워서 “왜 이것을 보고 있지” 변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진짜로 2회까지만 보면 나머지를 안 볼 수는 없다.


  1. 15-16 EPL의 현재까지 주인공은 단연 레스터 시티 FC다. 미분적으로 봤을 때 EPL 역사상 가장 무서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혹여 이번 시즌을 이대로 1위로 마무리 하더라도 Big 4에 들지는 못할 것이다. 적분에 의한 평가를 받기 위해선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3위 안의 순위로 마무리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적분적인 평가가 많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2. 드라마, 영화의 장면을 용도에 맞게 편집해 별도의 촬영없이 만드는 광고의 한 형태. 
  3. 과거 Mnet은 24시간 뮤직비디오만 틀어주는 채널이었다. 지금의 모습을 과거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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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W

One Comment

  1. […] 느낀건데 어디가나 ‘프로듀스 101’이 이야기 소재로 빠지지 않는데 ‘스토리텔링 마케팅’과 엮어 얘기하는 것도 참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으니 한번씩 읽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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