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의 해체

책이란 무엇인가? 모두들 책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글이나 그림이 담겨 있는 종이의 묶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모두’라는 단어를 이렇게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책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존재이기 떄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엄마 아빠의 손보다 책을 더 자주 손에 쥐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장 자연스럽고 친숙한 책이라는 것의 해체에 대해서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필자는 책을 참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구에게 묻기보다 먼저 책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이미 ‘내가 알고 싶은 모든 것은 책에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책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변화는 종이책의 해체와도 연관된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나의 책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종이책의 한계

그 첫번째는 느리다는 것. ‘느리다’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컨텐츠의 생성 속도면의 느림, 또 다른 하나는 컨텐츠 소비를 위한 접근성의 느림이다. 중학교때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 나이에는 일반적 진리를 배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내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안 쉬고 돌고 있고, 뉴턴의 만유인력을 배우기 이전부터 물체는 늘 떨어지고 싶어했다. 이런 진리의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된 자료가 필요없다. 다만 전달의 목적에 있어서 변화가 있을 수 있겠다. 꼭 진리일 필요도 없다. 리처드 도킨스는 본인의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의 수많은 개정판에 대해서 그는 오직 일부의 수치를 업데이트 할 뿐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고 했다. 이렇게 컨텐츠에는 주기적 업데이트가 필요하지 않은 영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반대로 시간에 따라 그 가치를 잃어가는 것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2013’, ‘트렌드’ 이런 키워드들의 책은 이미 책이 나온 순간부터 가치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런책은 2013 트렌드라고 하고서는 2012년 중순이면 이미 다 완성이 된다.) 그런 책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컨텐츠를 기획하고,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하고 종이책으로 출판되고, 그것이 다시 소매점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즉 현재 책으로 만들어지는 컨텐츠 중에서 상당부분은 ‘종이책’이 적합하지 않다.

<Book Publishing Process>

두번째는 편의성의 문제. 종이책의 해체, 대안으로서의 E-Book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재밌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책의 중요한 부분을 ‘종이를 넘길때의 느낌’이라고 말한다. 필자 역시 그렇다. 손에 쥐어지는 종이 뭉치의 느낌, 그리고 얼만큼 읽었는지 %가 아니라 손에 쥔 종이의 묵직함이 말해주는 촉감의 정보. 하지만 이런 ‘감성’들은 우리가 컨텐츠에 집중하는 순간 그 의미가 점차 줄어든다. 책을 왜 읽는가? 종이책을 넘길때의 그 느낌이 좋아서? 항상 첫째는 컨텐츠이고, 그 외의 종이에서 오는 감성은 부가적인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점점 컨텐츠에 집중하게 되면 그 부가적인 감성의 요소는 편의성에 묻히게 된다. 우리가 읽는 책은 시간날때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 문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필자는 읽는 책의 대다수는 비문학이다. 문학처럼 한문장 한문장 곱씹으면서 그리고 느끼면서 읽는다기보다, 빠르게 주요 개념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한 뒤에 발췌하듯이 읽어 내려가게 된다. 한번이라도 킨들이나 iBooks를 통해서 전자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목차가 얼마나 유용한지, 그리고 책의 일부분을 발췌하고, 기록하고, 메모하는 작업이 한 곳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알 것이다.

<Kindle – Highlights and Notes>

지금까지 종이책의 한계에 대해서 ‘컨텐츠의 생성과 소비의 속도’, ‘편의성’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혹자들은 가독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지금에 와서 가독성은 큰 의미가 없다. 킨들의 화이트페이퍼로 한번만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전자잉크라는 기술이 가독성의 차이를 이미 없애버렸고, 화이트페이퍼의 경우 백라이트를 이용해 기존의 가독성에 편의성까지 훨씬 뛰어나다.

종이책의 끝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순간 종이책이 없어지고 전자책이 대체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는 의견도 아니다. 다만 ‘책’이라는 개념은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의 세대에서는 책을 떠올릴때 종이의 뭉치도 있지만 킨들과 같은 디바이스도 함께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문학과 같은 일부의 장르에서 종이책은 여전히 의미있는 터미널로 남겠지만, 콘텐츠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영역의 경우는 종이책이라는 터미널의 해체가 더 빨리 이루어 질 것이다. 현재의 전자책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전자책은 편의성 문제를 해결했지만 컨텐츠 생성과 소비의 속도에서는 마땅한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존 퍼블리셔들이 전자책 영역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책의 생성과 유통 구조의 문제가 수반되어야지만 진정한 의미의 종이책의 해체, 그리고 대안으로서의 E-Book 시장을 기대해 볼 수 있다.

Posted by 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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