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이지 않은 클래식의 대중화

‘말이 없는’ 클래식 음악의 힘이 참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 장르임에도 생각보다 흔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 포스팅(‘말이 많은 대중가요, ‘말이 없는’ 클래식)에도 언급했듯이 해석의 몫이 청자에게 있는 클래식 음악의 특성에서 기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 적으로도 기존에 존재했던 해석과 전혀 다른 장면에 클래식을 삽입함으로써 반전에서 오는 극대화된 감정을 끌어내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영화 ‘Raid 2’ – 헨델의 ‘Sarabande’

액션 영화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평점이 너무 좋아서 보게 된 인도네시아 액션영화 ‘Raid 2’에서 예상치도 못한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충성해 온 조직의 회장 아들에게서 배신을 당한 한물간 노인과 그 노인을 기다리고 있는 암살자와의 눈밭 싸움 신에서 ‘음악의 어머니’ 헨델George Frederic Handel의 음악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더군다나 헨델의 사라반데Sarabande는 약 4분이 안 되는 짧은 느린 템포의 춤곡으로(17세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느린 궁중 춤곡의 형태), 언뜻 피 튀기게 잔인한 장면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느린 템포의 춤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잔인하게만 보일 수 있는 싸움장면을 감성적으로 느끼게 하기도 하며, 죽이는 쪽이나 죽임을 당하는 쪽 모두 이해하게 하는 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영화 ‘베테랑’ – 빈첸초 벨리니의 ‘Norma’

음악과 장면의 unbalance를 이용한 감독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하는 영화는 한국에서 큰 흥행을 한 ‘베테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쓰인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오페라 ‘Norma’는 재벌 3세에 어울리는 유아인의 교양 수준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알려져 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교양과목’인 이미지를 잘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개처럼 얻어맞고 돈 앞에 약자가 돼야 하는 정웅인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느끼게 해준다. 오페라 ‘Norma’의 가장 유명한 첫 장 Casta Diva는 주인공 Norma(priestess)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 간절한 마음을 평화의 신 Pure Goddess에게 기도하는 내용이다. 알고듣는 Casta Diva와 베테랑의 유아인(‘조태오’역)은 그 상황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문득 ‘평화’를 원하는 Norma의 기도가 결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는, 너무나 다른 선과 악의 장면에서 묘하게 그 경계를 흐려놓으며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 ‘암살’ –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어울리지 않는 듯 반전을 통해 감동을 주는 클래식도 있지만, 누구나 아는, 들어봤을 법한 클래식이 누구나 예상하는 전형적인 장면에 흘러나오기도 한다.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더욱 잘 알려진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 (악장의 이름부터 Romance이며, 전형적인 아름답고 느린 악장)은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과 하정우의 첫 만남인 상하이 호텔 ‘미라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다.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클래식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 웬만한 호텔에서 흔히 틀어놓는 쇼팽의 곡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2악장은 쇼팽 음악답게 남녀 사이의 로맨스에 설렘과 애틋함을 가져다주며, 어디에 쓰이건 거부감이 들지 않는 대표적인 ‘배경음악’이다.

 

슈가맨 같은 클래식 음악 – 드뷔시의 ‘달빛’

‘슈가맨’처럼 그 노래는 알고 있지만 가수는 잘 모르는 경우처럼, 작곡가는 낯설지만 음악만큼은 대중가요만큼 알려진 클래식도 꽤 많다. 그중 하나는 드뷔시Claude Debussy(프랑스 대표 인상파 작곡가)의 피아노 솔로 곡인 ‘달빛’Clair De Lune이다. 영화 ‘트와일라잇’에도 나온 곡으로, 곡 제목에서도 이미 힌트를 주는 물에 비친 달의 이미지가 영화의 내용을 뒷받침해주기도 하고, 일명 ‘명상 음악’답게 드라마 속 요가나 명상하는 장면에 자주 쓰이기도 하는, 클래식 중 가장 대중적인 곡이라 할 수 있겠다.

 

배경음악에 클래식이 많이 쓰이는 이유

듣는 이의 관심을 받아야 살아남는 대중음악에서는 ‘attention’으로 ‘attraction’을 끌어낸다. 하지만 클래식에서 ‘attention’은 중요하지 않다. ‘말이 없는’ 클래식은 특정 장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음악에 집중attention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음악의 의도와 실제 내용과는 상관없이 특정 장면에 따라 소름 돋는 음악이 될 수도, 잔인해질 수도 있고 한없이 애틋하고 슬퍼질 수도 있는 여러 얼굴을 가졌다. 이런 점때문에 클래식이 배경음악으로써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Posted by 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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