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비행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본인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다. 사용하는 기기device의 수가 몇 개인지 생각을 해봐야 될 정도로 많고, 생산성으로 명목으로 구입했지만 솔직히 과분한 기기와 서비스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는 순간 이렇게 무기력할 수 없다. 단지 인터넷이 안되는 것 뿐인데 그동안 하는 일의 절반, 아니 솔직히 90%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책을 들었다.(책 읽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를 해야되는 상황이 되면 이상하게 썩 즐겁지 않다)

베스트셀러를 대하는 생각.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homb는 한국에서 워낙 유명한 소설가라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한국만큼 책에도 이렇게 유행이 심한 곳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책은 많이 읽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새해 계획으로 무작정 ‘책 많이 읽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필요한 컨텐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책에 있는지가 우선인데 대다수는 그냥 독서를 유행처럼 한다. 그런 유행 속에 알게 된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homb라는 작가를 좋아하기란 쉽지 않았다. 워낙 소설을 많이 보지도 않을 뿐더러 베스트셀러라면 더욱 그렇다.

사실 이번 비행을 함께 하게 된 것도 리디북스에서 패키지 할인을 했었고, 마침 한편이 굉장히 짧아서 비행기에서 잠들기 전에 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구입했다. 어쨋든 패키지 할인을 하는 바람에 무려 5권이나 되는 아멜리 노통브의 책이 생기게 되었다. 한국에서 두바이, 두바이에서 이스탄불, 이스탄불에서 부카레스트까지 세번의 비행동안 이 짧은 책을 겨우 두권 읽었는데, 먼저 두권의 책에 대한 짧은 느낌과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에 대해 든 생각을 적어본다.(다섯권을 다 읽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어 지금 쓰기로 했다)

‘살인자의 건강법’

아멜리노통브_살인자의건강법아멜리 노통브의 첫 책이어서 그런지 조금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었다. 다소 무책임한 설정과 묘사가 가능한 소설이라는 장르 속에서 이렇게 담백한 설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녀에게 사람은 유일한 설정이자 유일한 주제였다.

소설이니까 내용 보다는 읽고나서 든 생각만 말하자면, 완전한 선과 완전한 악은 의외로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갖고 있는 기준, 생각들이 사회속에서 일정한 분포 안에서 다양하게 퍼져있지만, 그렇지 않은, 완전히 분리된 사상과 기준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오히려 일반적인 사회에서 말하는 악, 그것도 완전히 극단의 순수한 악이라면 정 반대인 선과 오히려 닮아있지 않을까.

‘적의 화장법’

아멜리노통브_적의화장법두번째는 조금 익숙해져서 그런지 과감한 설정에 대한 놀라움은 없었다. 두권의 책을 읽으면서 보이기 시작한 독특한 수사법이 흥미로웠다. 쉽게 얘기하면 말 장난같은 건데 책 전체가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단 한 문장도 실제로 쓸 법한 말이 없을 정도로 한 문장 문장이 어렵다. 그녀의 소설이 길지 않은 이유는 서사적인 흐름의 종결 때문이 아니라 운문에서 봄 직한 은유가 난무하는 대화 방식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필요해서 사용한 느낌이라기 보다,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같이 느껴진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이해받기 원하기 보다는 일방적인 소통에 익숙한 느낌이다.

내용은 ‘적의 화장법’이라는 제목에 충실하게 내부의 적이 어떻게 화장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기 합리화가 만들어낸 비참한 결말을 통해 그녀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지독한 과장과 비참한 묘사를 통해서 인간 본성에 대한 극단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감’이라는 것은 생각의 ‘정도'(얼만큼 그러한지)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그런 생각이 든적이 있는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담겨 있는 소설인 것은 맞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수준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아멜리 노통브 Amelie Nothomb

작가에 대한 궁금함 때문에 관련된 기사들을 검색해 봤는데,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불면의 밤에 찾아오는 자살의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소설에서도 그녀가 글을 쓰고 있는 그 ‘불면의 밤’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고요한 시간에,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내면에 있던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그런 그녀의 작업 스타일이 ‘인간’이라는 아주 한정적이지만 복잡한 주제를 설정하게 만든 것 같다.

이전에 소설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설문조사나 통계를 통한 분석보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더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장르라고 이야기했었다. 아멜리 노통브가 생각하는 인간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지도, 또 어쩌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답을 떠나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녀의 소설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Also published on Medium.

Posted by JW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