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면 지구가 만들어진 것은 세일즈맨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었다.

 재앙이 임박해 원래의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 했을 때, 인류는 세 척의 거대한 배를 나눠 타고 탈출한다. A선에는 사상가와 리더, 성공한 인물들이, B선에는 세일즈맨과 컨설턴트들이, C선에는 노동자와 장인들이 탑승한다. B선이 가장 먼저 출발하자 B선의 승객들은 모두 환호한다. 하지만 세일즈맨들은 자신들이 계략에 빠진 것을 알지 못한다. A선과 C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언제나 B선에 탄 사람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참에 그들을 제거하기로 작당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B선은 지구에 착륙하게 된다. 

– 책 <Zero to One> 중


‘Sales’란 말은 제품을 팔기 위해 필요한 유통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세일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도 역시 A선과 C선과 같이 세일즈를 위해 일하는 ‘중개인’들이 방해가 될 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편견이자 오해에 불과하다. 근사한 물건을 만들었다고 고객이 저절로 찾아오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세일즈가 고객을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며, 이 것은 생각하는 것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속해있는 팀, 그리고 하고 있는 일이 ‘마케팅’이라는 세일즈 역할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어서 좀 더 심각하게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타 부서에서(특히 개발자들) 느끼는 세일즈의 중요성은 실제보다 매우 낮다. 엄격히 말해서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일하는 필자보다도, 사실 직접 고객 기업과 소비자를 상대하는 세일즈맨의 역할에 대한 과소평가가 더 심하다. 마케팅에서 흔히들 ‘제품이 잘 팔리면 개발자 때문이고, 안 팔리면 마케팅 때문이다’라는 농담을 하는데 우스갯 소리로 넘기기 힘들정도로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곳이 많다.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발자들이 겪는 고난이 눈에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제품 기획에서 겪는 디자이너와 개발자들간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 그리고 이를 시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겪어야 하는 수없는 시행 착오들, 또 양산화 시키기 위해 해야하는 공장과의 풀어야하는 숙제들. 개발자가 아닌 경영학만 공부해온 필자의 눈에도 개발자들이 겪어야 하는 양산까지의 고난들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세일즈는 그렇지 않다. 하루종일 연구실에 박혀서 루페로 보이는 작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개발자들에 비해, 세일즈 맨은 거래처와의 식사라는 핑계로 주간에 2시간이 넘게 자리를 비우기도 하고, 또 필자와 같은 마케터들은 TVC 촬영장, 해외에서 열리는 WIS, MWC와 같은 전시 참관 등 잦은 해외 출장 등 개발자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즐거워 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

세일즈 맨이 매달 말이 되면 받는 마감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마케터들이 크리에이티브 제작을 위해서 마치 뇌즙을 짜내듯이 밤새 고민하는지 개발자들은 알기 어렵다. 지금 회사의 세일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힘들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누가봐도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처럼 보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세일즈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의 세일즈는 숨어있어서 세일즈를 하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하는데 있다.

극단적으로 개발자 한명으로 이뤄진 회사에서도 서비스를 런칭하고 나면 세일즈가 필요하다. 즉, 회사 내부에 세일즈 담당자가 없다는 것은, 본인이 이제 세일즈를 해야한다는 것과 같다.

신제품이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극찬을 받고 있는데 (그리고 마케팅에서도 제품의 기술력에 대해 시장에서 강조하고 있는데), 숫자는 따라오지 않아 세일즈 쪽에 질타가 떨어지고 있어 푸념 한번 해본다.

Posted by 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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