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배우 ‘강동원’

얼마전 손석희의 뉴스룸에서 배우 강동원의 인터뷰를 보았다. 뉴스룸이라는 프로그램에 강동원이 등장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동안 포털이 뜨거웠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느린 말투지만 자신있게 ‘상업 영화 배우’로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손석희와의 인터뷰 중에 스스로를 상업 영화 배우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상업 영화 배우로서 상업 영화에 출연한다면, 자신을 믿고 투자해주신 분들에게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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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똑똑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가진 연기에 대한 철학이나, 더 크게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영화가 갖는 의미와 본인의 역할에 대해서 얼마든지 포장해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담담하게 본인을 상업 영화 배우로 표현하면서 투자자의 목적에 맞는 연기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강동원이라는 막강한 흥행력을 가진 배우가 상업 영화 배우로서 투자자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러니하게 순수 예술로 불리는 클래식 음악의 두 거장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상반된 인생이 떠올랐다.

예술가이기 전에 직장인이었던 ‘하이든’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무려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남겼다. 그가 가진 음악적 재능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클래식 작곡가보다 이렇게 많은 곡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평생동안 작곡에 매진하게 만들었던 걸까?
당시 하이든과 같은 pro miusician 들은 대부분 ‘배가 고픈’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여유였고,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금전적인 후원을 하는 귀족들의 taste에 맞는 음악을 해야만 했다. 하이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Esterhazy가문(오스트리아 왕족)은 대대로 음악을 사랑하고 아마추어1로서 음악을 즐기는 집안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곡가였던 하이든은 뮤직 디렉터로서 그 가문에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작곡가 하이든’이라는 이름이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생애 작곡한 104개의 교향곡 중 70곡을 자신을 후원해준 Miklos 왕자를 위해 일하는 동안 완성했으며, 오직 그를 위해서 무려 150개가 넘는 Baryton을 위한 곡을 쓰기도 했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런 환경을 통해 하이든은 당시 가장 화려하고 성공한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의 명성은 곧 독일, 체코, 이탈리아 등 주변 유럽 국가로 빠르게 퍼져나 각 나라의 귀족들과 수도원에서 그의 음악을 수집하고, 그들만의 도서관에 그의 곡을 모으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그 덕분에 하이든의 필체가 담긴 수많은 악보의 원본이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까지도 그것을 우리가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즉, 하이든은 당시 귀족들의 taste, needs, wants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런 것들을 자신의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소통할 줄 아는, 지금으로 말하면 굉장히 대중적인 작곡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7세까지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하이든은 본인의 예술적인 재능을 펼치면서도 고용인으로서 돈이 되는 음악을 만들 줄 아는 굉장히 현명한 직장인(작곡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배고픈 천재 작곡가 ‘모짜르트’

과연 모짜르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 알고 있듯이 실제로 모짜르트는 음악 천재였다. 세살에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곧 작곡도 함께 시작했으며, 이런 그의 천재성으로 어려서부터 전 유럽을 돌며 연주 투어를 했었다.
하지만 20대의 성인이 된 모짜르트의 음악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오랜 연주 투어로 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귀족 가문을 소개시켜주며 안정적으로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기를 권유하지만, 모짜르트는 고용주와의 감정 다툼이 잦았고 가문에 고용된 작곡가의 삶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와버린 모짜르트는 free-lancer로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 마저도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그의 음악은 당시 “too sophiscated for the patrons”라고 평가되어 귀족에게 인기가 없었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선생으로서의 길도 인내심 부족으로 오래하지 못했다.

이런 모짜르트를 두고 순수 예술을 추구하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상업적인 것들과 타협하지 않는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짜르트의 곡이 갖고 있는 천재성과 음악성은 절대 배고픔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천재 음악가로 아주 어려서부터 주목을 받아 자연스럽게 사회경험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모짜르트는, ‘누군가를 위해 음악을 해야 하는 삶’과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가로서의 삶’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살아서 빛을 보지 못하고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의 위대함은 영원히 그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위대한 음악을 더 많은, 더 다양한 곡으로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예술과 상업성

귀족들이 원하는 음악과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 사이의 균형을 찾아내며 평생동안 작곡에만 집중했던 하이든에게 이토록 풍성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음을 감사하고. 또 짧은 생이지만 클래식 역사 상 가장 임팩트 있는 곡들을 남긴 모짜르트에게 그의 뛰어난 음악성에 아주 조금의 경제적 능력을 갖춰 더 많은 곡을 남길 수 있었으면 아쉬워 하듯. 중요한 것은 얼마나 순수한지, 상업적인지가 아니라 그들의 예술성이 그대로 담겨있는 작품, 그 자체에 있다.
예술에 상업성이라는 잣대를 갖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외부인의 시각이다. 안정적으로 풍성한 예술 활동을 위해서 일정 수준의 경제력은 반드시 필요하고, 예술가는 그 경제력을 상업 예술을 통해서 얻을 수 밖에 없다. 모짜르트 조차도 안정된 삶을 위해 다양한 상업적 시도를 했음을 잊지 말자.

그래서일까. 뉴스룸 인터뷰에서 강동원이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역할을 본인의 겉멋 든 연기 철학으로 표현하지 않고,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상업영화배우로 남아 지속적인 연기 활동을 통해 배우로서의 강동원을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상업적으로 들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풍성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예술가의 말처럼 들렸던 것 같다.


  1. “music-lover” who didn’t make living by it 

Posted by 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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